정리를 해야 한다는 걸 모르거나, 정리의 필요성을 몰라서 방이 어질러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안 되는” 상태다. 이 문제는 게으름이나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의 실행 기능, 인지적 과부하, 감정적 연합, 환경 설계 실패가 결합된 결과다. 이 글에서는 왜 물건 정리가 어렵게 느껴지는지, 어떤 심리·뇌과학적 기제가 작동하는지, 그리고 환경 설계를 통해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정리한다.

뇌는 정리를 ‘고난도 작업’으로 취급한다: 실행 기능과 의사결정의 부담
정리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뇌 작업이다.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위가 아니라 분류 → 판단 → 계획 → 실행의 연속이 필요하다.
① 정리는 판단(Decision-making)의 연속이다
정리를 할 때 우리는 매번 다음 질문을 처리한다:
● 이건 버릴까, 남길까?
● 어디에 둘까?
● 언제 사용할까?
● 다른 물건과의 관계는?
이처럼 선택과 판단이 연속적으로 요구되는 작업은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유발한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평균 3~5만 번의 판단을 하고, 중요한 판단일수록 피로도가 누적된다. 정리는 실질적으로 “미세 판단의 집합”이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
②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리소스 문제
정리는 전전두엽(뇌의 실행 기능 담당)을 많이 사용한다:
● 분류(categorization)
● 계획(planning)
● 작업 기억(working memory)
● 억제(inhibition)
ADHD·우울·수면 부족·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실행 기능이 약해지고 정리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평소엔 잘하는데 집은 못 치움”이라는 경우는 충분히 과학적이다.
③ 물건이 많을수록 뇌 부담 증가
심리학 연구에서는 시각적 혼잡(visual clutter)이 뇌에 부하를 주며:
✔ 작업 기억 점유
✔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
✔ 주의 전환 증가
✔ 실행 기능 저하
를 유발한다고 보고했다.
즉 물건이 많을수록 정리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리가 안 되는 환경 자체가 뇌 기능을 더 떨어뜨린다.
물건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 인지 편향·감정 연합·기회비용 착각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과 가치 판단이 개입된 작업이다.
①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 “돈 주고 산 건데…”
● “혹시 나중에 쓸지도…”
● “아까워서 못 버리겠어”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상승한다.
②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이미 들어간 돈·시간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다:
✔ “비싸게 샀어”
✔ “선물 받은 거야”
✔ “몇 번 안 써서 아까워”
하지만 매몰비용은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편익이 0이면 버리는 게 맞다.
③ 감정 연합(Emotional attachment)
선물·추억·기념품은 기능이 아닌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뇌는 물건을 기능적 자산이 아니라 기억 저장 장치로 취급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리는 기억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④ ‘미래 가능성’ 착각(Future bias)
정리 중 자주 나오는 문장:
✔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 “잘만 쓰면 필요할걸?”
하지만 통계적으로 “언젠가”는 거의 오지 않는다.
조사에서는 집 안에서 “언젠가 쓸 물건” 중 80% 이상이 3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다.
미래 가능성 때문에 현재 공간이 희생되는 구조다.
⑤ 기회비용 계산 오류
정리에 실패하는 사람은 종종
● “버리면 손해”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 “안 버리면 공간과 정신 에너지가 손해”
에 가깝다.
공간은 비용이 있는 자원이고, 시각적 혼란은 인지 비용이다.
정리가 지속되지 않는 이유: 환경 설계 실패와 시스템 부족
정리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 문제다.
① 물건의 ‘자리’가 없으면 정리가 불가능
정리가 지속되는 공간에는 다음 조건이 있다:
✔ 카테고리 존재
✔ 물건의 위치가 즉시 결정됨
✔ 행동 비용이 낮음
반대로 물건의 ‘자리’가 없다면:
➡ 물건 내려놓기 → 임시방치 → 누적 → 혼잡
이런 순환이 생긴다.
② 행동 비용(Action cost)의 문제
뇌는 항상 저항이 적은 행동 경로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 서랍 안 넣기 귀찮음 → 책상에 둠
● 옷 걸기 귀찮음 → 의자에 둠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행동경제학적 시스템 문제다.
행동 비용이 낮아야 습관이 유지된다.
③ 수납이 많아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
많은 사람이 “수납함을 사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 수납 증가 → 물건 보관 증가 → 정리가 더 어려워짐
즉 수납은 정리의 해법이 아니라 물건 저장 시스템일 뿐이다.
정리는 감량(Decluttering), 수납은 보관(Storage)이며 둘은 다른 작업이다.
④ 청소 vs 정리의 혼동
많은 사람이 “치우는 것”과 “버리는 것”을 동일하게 본다.
● 청소(Cleaning) = 청결 유지
● 정리(Organizing) = 구조 설계 + 감량 + 분류
그래서 청소만 반복하다가 정리는 영원히 미뤄진다.
정리는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뇌의 실행 기능 부담
✔ 의사결정 피로
✔ 인지 편향(소유 효과, 매몰 비용 등)
✔ 감정적 연합
✔ 행동 비용 설계 실패
✔ 수납 중심의 오해
따라서 정리는 다음 순서가 가장 효율적이다:
① 감량(Declutter)
② 분류(Categorize)
③ 자리 지정(Placement)
④ 행동 비용 최소화(Systemizing)
즉 정리는 “좋은 습관” 이전에 좋은 설계가 필요하다.
물건 정리는 곧 인지과학 + 행동경제학 + 환경디자인의 결합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