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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정리가 안 되는 이유: 실행 기능·인지 편향·환경 설계의 과학

by 루민의 보드 2026. 1. 18.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걸 모르거나, 정리의 필요성을 몰라서 방이 어질러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안 되는” 상태다. 이 문제는 게으름이나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의 실행 기능, 인지적 과부하, 감정적 연합, 환경 설계 실패가 결합된 결과다. 이 글에서는 왜 물건 정리가 어렵게 느껴지는지, 어떤 심리·뇌과학적 기제가 작동하는지, 그리고 환경 설계를 통해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정리한다.

책상 위에 물건이 흩어져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책상 위에 물건이 흩어져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뇌는 정리를 ‘고난도 작업’으로 취급한다: 실행 기능과 의사결정의 부담

정리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뇌 작업이다.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위가 아니라 분류 → 판단 → 계획 → 실행의 연속이 필요하다.

 

① 정리는 판단(Decision-making)의 연속이다

정리를 할 때 우리는 매번 다음 질문을 처리한다:

●  이건 버릴까, 남길까?

  어디에 둘까?

  언제 사용할까?

  다른 물건과의 관계는?

이처럼 선택과 판단이 연속적으로 요구되는 작업은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유발한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평균 3~5만 번의 판단을 하고, 중요한 판단일수록 피로도가 누적된다. 정리는 실질적으로 “미세 판단의 집합”이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

 

②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리소스 문제

정리는 전전두엽(뇌의 실행 기능 담당)을 많이 사용한다:

 

  분류(categorization)

  계획(planning)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억제(inhibition)

ADHD·우울·수면 부족·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실행 기능이 약해지고 정리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평소엔 잘하는데 집은 못 치움”이라는 경우는 충분히 과학적이다.

 

③ 물건이 많을수록 뇌 부담 증가

심리학 연구에서는 시각적 혼잡(visual clutter)이 뇌에 부하를 주며:

 

✔ 작업 기억 점유
✔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
✔ 주의 전환 증가
✔ 실행 기능 저하

를 유발한다고 보고했다.

 

즉 물건이 많을수록 정리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리가 안 되는 환경 자체가 뇌 기능을 더 떨어뜨린다.

 

물건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 인지 편향·감정 연합·기회비용 착각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과 가치 판단이 개입된 작업이다.

 

①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돈 주고 산 건데…”

  “혹시 나중에 쓸지도…”

  “아까워서 못 버리겠어”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상승한다.

 

②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이미 들어간 돈·시간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다:

 

✔ “비싸게 샀어”
✔ “선물 받은 거야”
✔ “몇 번 안 써서 아까워”

 

하지만 매몰비용은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편익이 0이면 버리는 게 맞다.

 

③ 감정 연합(Emotional attachment)

선물·추억·기념품은 기능이 아닌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뇌는 물건을 기능적 자산이 아니라 기억 저장 장치로 취급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리는 기억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④ ‘미래 가능성’ 착각(Future bias)

정리 중 자주 나오는 문장:

 

✔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 “잘만 쓰면 필요할걸?”

 

하지만 통계적으로 “언젠가”는 거의 오지 않는다.
조사에서는 집 안에서 “언젠가 쓸 물건” 중 80% 이상이 3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다.

 

미래 가능성 때문에 현재 공간이 희생되는 구조다.

⑤ 기회비용 계산 오류

정리에 실패하는 사람은 종종

  “버리면 손해”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안 버리면 공간과 정신 에너지가 손해”

에 가깝다.

공간은 비용이 있는 자원이고, 시각적 혼란은 인지 비용이다.

 

정리가 지속되지 않는 이유: 환경 설계 실패와 시스템 부족

정리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 문제다.

 

① 물건의 ‘자리’가 없으면 정리가 불가능

정리가 지속되는 공간에는 다음 조건이 있다:

 

✔ 카테고리 존재
✔ 물건의 위치가 즉시 결정됨
✔ 행동 비용이 낮음

반대로 물건의 ‘자리’가 없다면:

➡ 물건 내려놓기 → 임시방치 → 누적 → 혼잡

이런 순환이 생긴다.

 

② 행동 비용(Action cost)의 문제

뇌는 항상 저항이 적은 행동 경로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서랍 안 넣기 귀찮음 → 책상에 둠

  옷 걸기 귀찮음 → 의자에 둠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행동경제학적 시스템 문제다.

행동 비용이 낮아야 습관이 유지된다.

 

③ 수납이 많아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

많은 사람이 “수납함을 사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 수납 증가 → 물건 보관 증가 → 정리가 더 어려워짐

즉 수납은 정리의 해법이 아니라 물건 저장 시스템일 뿐이다.

정리는 감량(Decluttering), 수납은 보관(Storage)이며 둘은 다른 작업이다.

 

④ 청소 vs 정리의 혼동

많은 사람이 “치우는 것”과 “버리는 것”을 동일하게 본다.

  청소(Cleaning) = 청결 유지

  정리(Organizing) = 구조 설계 + 감량 + 분류

그래서 청소만 반복하다가 정리는 영원히 미뤄진다.

 

정리는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뇌의 실행 기능 부담
✔ 의사결정 피로
✔ 인지 편향(소유 효과, 매몰 비용 등)
✔ 감정적 연합
✔ 행동 비용 설계 실패
✔ 수납 중심의 오해

 

따라서 정리는 다음 순서가 가장 효율적이다:

 

① 감량(Declutter)
② 분류(Categorize)
③ 자리 지정(Placement)
④ 행동 비용 최소화(Systemizing)

 

즉 정리는 “좋은 습관” 이전에 좋은 설계가 필요하다.
물건 정리는 곧 인지과학 + 행동경제학 + 환경디자인의 결합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