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황금빛 거품층, ‘크레마(Crema)’다. 어떤 사람은 크레마를 에스프레소의 상징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은 맛과 향을 왜곡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크레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로스팅, 탄화, CO₂ 확산, 압력, 유화, 고형분 분산 같은 복잡한 과학적 요소들이 숨어 있다. 이 글에서는 크레마가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는지, 왜 원두 상태·추출 방식·시간에 따라 달라지는지 물리학·화학·재료과학 관점에서 정리한다.

크레마의 출발점: 로스팅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 저장’
크레마 형성 과정은 로스팅 단계에서 이미 시작된다. 생두는 딱딱하고 밀도가 높지만 로스팅 후에는 다공성 기공 구조가 형성된다. 이 구조는 열분해(Pyrolysis), 마이야르 반응, 캐러멜화 반응 등을 통해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가 생성된다.
1. 로스팅 중 CO₂가 어떻게 생기는가
로스팅 온도가 150~230℃에 도달하면 세 가지 주요 화학 변환이 일어난다:
● 마이야르 반응 → 갈변 + 방향 성분 생성
● 캐러멜화 반응 → 당류 열분해
● 열분해(Pyrolysis) → 고분자 분해 + 가스 생성
세 번째 과정에서 방출되는 가스 중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이며 일부는 일산화탄소(CO), 수증기, 揮발산 등이 포함된다.
2. 로스팅 후 원두 내부 기체 압력
로스팅 직후 원두는 매우 높은 CO₂ 농도를 가진다. 연구에서는 로스팅 직후 원두의 기체 함량이 신선 중량 기준 1~2%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CO₂는 원두 내부 기공에 포획되며, 내부 압력은 대기압보다 높다.
3. 디개싱(Degassing) 과정
로스팅 이후 CO₂는 시간에 따라 방출되는데 이것을 디개싱이라고 한다. 시간별 변화 예시는 다음과 같다:
● 로스팅 직후 24시간: 전체 CO₂의 약 40~50% 방출
● 3~7일: 방출 속도 감소 → 향미 안정
● 2~4주 이후: CO₂ 거의 소멸 → 크레마 감소
그래서 에스프레소 추출에 최적이라고 여겨지는 시점이 로스팅 후 3일~2주 사이인 이유다. 이 시기는 향미 성분과 CO₂가 균형을 이루어 크레마 형성 + 풍미 보존이 모두 가능하다.
고압 환경에서의 추출: CO₂ 용해 → 감압 → 기포화 과정
에스프레소는 일반 커피와 달리 압력(Pressure) 기반 추출이다. 여기가 크레마의 핵심이다.
1. 압력에 의한 CO₂ 용해
에스프레소 머신은 보통 9 bar(대기압의 약 9배) 압력으로 물을 밀어 넣는다. 높은 압력은 CO₂의 물에 대한 용해도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헨리의 법칙(Henry’s Law)으로 설명할 수 있다:
■ 기체 용해도 ∝ 분압
즉 고압에서 CO₂가 더 많이 액체에 녹는다.
2. 샷이 컵에 떨어지면서 압력 급감
추출이 컵에 떨어지는 순간 압력은 9 bar → 1 bar로 떨어진다. 이때 액체 내부에 녹아 있던 CO₂가 감압로 인해 기체로 재분리된다. 이는 탄산음료 캔을 열었을 때 기포가 빠져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분리된 CO₂는 마이크로버블(micro-bubbles)을 형성하며 상승한다. 이 작은 버블이 크레마의 첫 출발점이다.
3. ‘버블이 거품’이 되려면 계면막이 필요하다
순수한 물에서 버블은 바로 터져 사라지지만, 에스프레소에서는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 이유는:
● 커피 오일(lipids)
● 단백질(peptides)
● 고형분(solubles)
이 기포를 감싸 안정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크레마는 기체 + 유화물질 + 고형분으로 이루어진 에멀전-거품 복합 시스템이다.
크레마 품질을 결정하는 변수: 원두·분쇄·압력·블렌드·시간
크레마는 단순히 “거품이 많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화학 변수에 매우 민감한 지표다.
1. 원두 품종: 로부스타 vs 아라비카
● 로부스타(Robusta): 지방·고형분·단백질이 많아 크레마 두꺼움
● 아라비카(Arabica): 향미·산미 중심, 크레마 얇음
그래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블렌드에는 로부스타 10~30%가 섞이는 경우가 많다.
2. 배전도(Roast level)
● 다크 로스트: 내부 기공 증가 + CO₂ 많음 → 크레마 풍부
● 라이트 로스트: CO₂ 적고 용해 어려움 → 크레마 적음
다만 다크 로스트는 맛이 단조롭고 탄맛이 강해지는 단점이 있다.
3. 원두 상태(디개싱 시간)
● 0~24시간: 과도한 CO₂ → 크레마 많지만 맛이 불안정
● 3~14일: 균형적 → 최적 추출
● 4주: CO₂ 부족 → 크레마 적고 향미 약화
4. 분쇄도·탬핑·추출 압력
분쇄도가 너무 곱거나 탬핑이 강하면 과추출 + 채널링 차단이 일어나며 CO₂ 방출이 달라진다. 반대로 너무 굵으면 압력이 형성되지 않아 크레마가 거의 없다.
압력은 크레마 생성의 절대 조건이라 저가형 전자동 머신보다 9 bar 유지 가능한 반자동 머신이 더 풍부한 크레마를 만든다.
5. 물의 화학적 특성
카페에서는 TDS(총 용질농도) 75~125ppm 수준의 경수-연수 균형 물을 선호한다. 이 범위가 오일 추출과 유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6. 시간에 따른 크레마 변화
에스프레소 표면의 크레마는 시간에 따라 다음 변화를 겪는다:
● 추출 직후: 밝고 두껍고 탄산감 있음
● 30초~1분: 거품 안정화→색 짙어짐
● 1~3분: 기포 구조 붕괴 → 표면 흉터(점) 형성
● 3~5분: 대부분 사라짐 → 갈색 띠만 남음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샷 추출 후 30초~1분 내 음용을 권장한다.
7. 크레마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닌’ 이유
카페 초보들은 “크레마가 많다 = 좋은 커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절반만 맞다. 실제로는:
● 로부스타·다크 블렌드 → 크레마 많지만 향미 단순
● 아라비카 싱글오리진 → 크레마 적지만 향미 복합
따라서 크레마는 미적 지표이지 품질 지표는 아니다.
또한 크레마에는 쓸개질·고형분이 포함되어 있어 쓴맛과 탄맛이 농축되어 있다. 일부 커핑 전문가들은 크레마를 걷어내고 마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