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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크레마는 어떻게 생길까: 이산화탄소 확산의 과학

by 루민의 보드 2026. 1. 19.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황금빛 거품층, ‘크레마(Crema)’다. 어떤 사람은 크레마를 에스프레소의 상징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은 맛과 향을 왜곡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크레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로스팅, 탄화, CO₂ 확산, 압력, 유화, 고형분 분산 같은 복잡한 과학적 요소들이 숨어 있다. 이 글에서는 크레마가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는지, 왜 원두 상태·추출 방식·시간에 따라 달라지는지 물리학·화학·재료과학 관점에서 정리한다.

크레마가 형성된 에스프레소 컵
크레마가 형성된 에스프레소 컵

 

크레마의 출발점: 로스팅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 저장’

크레마 형성 과정은 로스팅 단계에서 이미 시작된다. 생두는 딱딱하고 밀도가 높지만 로스팅 후에는 다공성 기공 구조가 형성된다. 이 구조는 열분해(Pyrolysis), 마이야르 반응, 캐러멜화 반응 등을 통해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가 생성된다.

 

1. 로스팅 중 CO₂가 어떻게 생기는가

로스팅 온도가 150~230℃에 도달하면 세 가지 주요 화학 변환이 일어난다:

● 마이야르 반응 → 갈변 + 방향 성분 생성

● 캐러멜화 반응 → 당류 열분해

● 열분해(Pyrolysis) → 고분자 분해 + 가스 생성

세 번째 과정에서 방출되는 가스 중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이며 일부는 일산화탄소(CO), 수증기, 揮발산 등이 포함된다.

 

2. 로스팅 후 원두 내부 기체 압력

로스팅 직후 원두는 매우 높은 CO₂ 농도를 가진다. 연구에서는 로스팅 직후 원두의 기체 함량이 신선 중량 기준 1~2%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CO₂는 원두 내부 기공에 포획되며, 내부 압력은 대기압보다 높다.

3. 디개싱(Degassing) 과정

로스팅 이후 CO₂는 시간에 따라 방출되는데 이것을 디개싱이라고 한다. 시간별 변화 예시는 다음과 같다:

● 로스팅 직후 24시간: 전체 CO₂의 약 40~50% 방출

● 3~7일: 방출 속도 감소 → 향미 안정

● 2~4주 이후: CO₂ 거의 소멸 → 크레마 감소

그래서 에스프레소 추출에 최적이라고 여겨지는 시점이 로스팅 후 3일~2주 사이인 이유다. 이 시기는 향미 성분과 CO₂가 균형을 이루어 크레마 형성 + 풍미 보존이 모두 가능하다.

 

고압 환경에서의 추출: CO₂ 용해 → 감압 → 기포화 과정

에스프레소는 일반 커피와 달리 압력(Pressure) 기반 추출이다. 여기가 크레마의 핵심이다.

 

1. 압력에 의한 CO₂ 용해

에스프레소 머신은 보통 9 bar(대기압의 약 9배) 압력으로 물을 밀어 넣는다. 높은 압력은 CO₂의 물에 대한 용해도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헨리의 법칙(Henry’s Law)으로 설명할 수 있다:

 

■ 기체 용해도 ∝ 분압

즉 고압에서 CO₂가 더 많이 액체에 녹는다.

 

2. 샷이 컵에 떨어지면서 압력 급감

추출이 컵에 떨어지는 순간 압력은 9 bar → 1 bar로 떨어진다. 이때 액체 내부에 녹아 있던 CO₂가 감압로 인해 기체로 재분리된다. 이는 탄산음료 캔을 열었을 때 기포가 빠져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분리된 CO₂는 마이크로버블(micro-bubbles)을 형성하며 상승한다. 이 작은 버블이 크레마의 첫 출발점이다.

 

3. ‘버블이 거품’이 되려면 계면막이 필요하다

순수한 물에서 버블은 바로 터져 사라지지만, 에스프레소에서는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 이유는:

 

● 커피 오일(lipids)

● 단백질(peptides)

● 고형분(solubles)

이 기포를 감싸 안정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크레마는 기체 + 유화물질 + 고형분으로 이루어진 에멀전-거품 복합 시스템이다.

 

크레마 품질을 결정하는 변수: 원두·분쇄·압력·블렌드·시간

크레마는 단순히 “거품이 많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화학 변수에 매우 민감한 지표다.

 

1. 원두 품종: 로부스타 vs 아라비카

● 로부스타(Robusta): 지방·고형분·단백질이 많아 크레마 두꺼움

● 아라비카(Arabica): 향미·산미 중심, 크레마 얇음

그래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블렌드에는 로부스타 10~30%가 섞이는 경우가 많다.

 

2. 배전도(Roast level)

● 다크 로스트: 내부 기공 증가 + CO₂ 많음 → 크레마 풍부

● 라이트 로스트: CO₂ 적고 용해 어려움 → 크레마 적음

다만 다크 로스트는 맛이 단조롭고 탄맛이 강해지는 단점이 있다.

 

3. 원두 상태(디개싱 시간)

● 0~24시간: 과도한 CO₂ → 크레마 많지만 맛이 불안정

● 3~14일: 균형적 → 최적 추출

● 4주: CO₂ 부족 → 크레마 적고 향미 약화

 

4. 분쇄도·탬핑·추출 압력

분쇄도가 너무 곱거나 탬핑이 강하면 과추출 + 채널링 차단이 일어나며 CO₂ 방출이 달라진다. 반대로 너무 굵으면 압력이 형성되지 않아 크레마가 거의 없다.

 

압력은 크레마 생성의 절대 조건이라 저가형 전자동 머신보다 9 bar 유지 가능한 반자동 머신이 더 풍부한 크레마를 만든다.

 

5. 물의 화학적 특성

카페에서는 TDS(총 용질농도) 75~125ppm 수준의 경수-연수 균형 물을 선호한다. 이 범위가 오일 추출과 유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6. 시간에 따른 크레마 변화

에스프레소 표면의 크레마는 시간에 따라 다음 변화를 겪는다:

 

● 추출 직후: 밝고 두껍고 탄산감 있음

● 30초~1분: 거품 안정화→색 짙어짐

● 1~3분: 기포 구조 붕괴 → 표면 흉터(점) 형성

● 3~5분: 대부분 사라짐 → 갈색 띠만 남음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샷 추출 후 30초~1분 내 음용을 권장한다.

 

7. 크레마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닌’ 이유

카페 초보들은 “크레마가 많다 = 좋은 커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절반만 맞다. 실제로는:

 

● 로부스타·다크 블렌드 → 크레마 많지만 향미 단순

● 아라비카 싱글오리진 → 크레마 적지만 향미 복합

따라서 크레마는 미적 지표이지 품질 지표는 아니다.

 

또한 크레마에는 쓸개질·고형분이 포함되어 있어 쓴맛과 탄맛이 농축되어 있다. 일부 커핑 전문가들은 크레마를 걷어내고 마시기도 한다.